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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녀귀신
    카테고리 없음 2024. 1. 23. 09:29


    어릴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더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특히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을 때, 내 뒤를 덮칠것만 같은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행여나 나를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하는 낯선 사람 하나가 더 무섭다. 좁은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일부러 덮칠듯이 나를 위협하는 사람과 마주쳐봤거나 일부러 자신의 신체를 보여주며 성추행을 하는 미친 사람들과 마주쳐봤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이라니. 이건 그냥 무서워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겠지? 물론 이 책은 기담이야기가 아니다. 귀신 이야기에 담겨있는 우리 문화의 인문학적 접근이라고해도 될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내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이 더는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비극을 겪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슬픈 사연은 모종의 음모와 억압에 연루되어 있다. 귀신들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현실로 돌아와 억눌렸던 자신의 내면을 귀곡성 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한국인에게 귀신의 이미지가 유독 처녀귀신으로 고착된 것은 미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희생의 그림자를 반영한다"(173) 추석 때, 세월호 유가족 중 누군가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곳으로 찾아가 제를 올렸다던가.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귀환과 어쩌면 너무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이 있을까봐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한을 풀어주고 싶다했던가. 처녀귀신의 이야기와 넋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 이야기가 단지 무서운 전래동화처럼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그저 한여름밤에 더위를 잊기 위해 단지 무섭자고 꺼낸 수다속에서 영혼 을 믿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보다 더 귀신의 존재를 믿는거 아니겠냐는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도 내 기억과 느낌이 실제인지 구분을 못하겠는데, 몇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직 그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나는 젖은 머리를 말리며 마루로 나오다가 평소 아버지가 즐겨 앉으시던 소파에서 얼핏 아버지의 그림자를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몇달 동안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곧 전화를 통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어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환상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끔은 아버지가 하늘로 가시기 전에 즐겨 앉으시던 그 자리에 앉아 내 모습을 보고 가신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아버린 수많은 생명은 어떠할까. 그 파도에, 그 짧은 시간에도 수십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어부들의 외침은, 충분히 구해낼 수 있는 이들을 너무도 어이없이 허망하게 수많은 생명을 보내버렸다는 분노를 떨굴수가 없다. 내가 이러한데 그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고 어이가 없을까.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던 그들, 그 아이들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세월호를 타고 들뜬 기분으로 친구들과의 여행을 즐기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도착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보낸 마지막을 떠올려볼 때면 너무나 끔찍하고 두려워서 바로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만다. 잊지않겠다,라고 결심했지만 그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구조를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들은 훗날 엄청난 일로 추억하게 될 하나의 사건일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미래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여자 귀신은 공포를 환기시키며 현실로 귀환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결코 무서운 파괴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억울하게 현실에서 쫓겨난 자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추방됐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죽음의 세계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여자 귀신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머물 수 없는 난민이다. 그들은 오직 이야기하는 주체, 언어적 존재로서 신생한다"(66) 자신들이 빠져죽은 바다를 떠나지 못해 그곳에서 떠돌고 있을까봐 그 혼을 위로하고 고이 보내주고 싶다는 어느 유가족의 마음을, 단지 미신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귀신 이야기를 한다 는 것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발성하는 증표가 된다. 그것이 화들짝 놀라는 단발성 공포의 형식일지라도, 전율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사회의 그늘을 들추는 불편한 진실과 목도하게 된다. 그래서 공포의 순간은 차라리 신성하다"(176) 그래서 오히려 귀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에 가려져있고 현재로서는 그 안개가 모두 걷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라도 사회의 모순을 뼈아프게 들추는 진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며, 바로 이 불편함 이 귀신 이야기가 형성하는 공포의 요체다"(175) 그러니 진실을 알게 되는 불편함을, 그 모든것이 주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말자. 잊지 않겠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해주자. 어쩌면 진짜 귀신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세월호 사건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추방된 자의 항변에 귀 기울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 이며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의무임을 잊지말아야한다.
    30여 편 귀신 이야기로 살피는 조선시대의 마이너리티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즉,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일이다. 시리즈는 그림, 소설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분석하여 한국 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 소개한다. 이 책은 시리즈의 제 6권으로 처녀귀신 이다. 조선시대 유행한 30여 편의 귀신 이야기로 당시의 마이너리티를 조명한 작업이다.

    처녀귀신은 한국의 대표적인 귀신이다. 총각귀신, 아빠귀신, 엄마귀신, 할머니귀신, 할아버지귀신도 있을 법한데 왜 하필 처녀귀신일까.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처녀귀신은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한 타자의 슬픔을 상징한다.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맛보거나, 심지어 강간당해 죽은 억울한 여인이다. 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겪어야 했던 그녀들의 고난은 귀신 이야기로 후세에 남았다.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귀신 이야기에 인문학적 시선을 투영함으로써 신선한 감흥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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