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나쁜 에너지 기행
    카테고리 없음 2024. 2. 5. 18:47


    2011년 3월 11일, 브라운관이 뿜어대던 영상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비현실적으로 요동치던 파도는 모든 것을 휩쓸고 갈 태세였다.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건 원전의 문제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방사능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해산물을 기피하는 현상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산 제품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인 에너지로 원자력을 인식하던 기존 사고를 변화시킬 것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한 방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놀라운 수준의 폭발성을 지녔으며, 그로 인한 소요 비용 역시 천문학적임을 이제는 우리의 뇌리에 각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부는 여전히 원전에 의존적이며, 심지어 이를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부를 창출하려는 욕심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의 놀랄 만한 불평등을 고려했을 때 에너지 문제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간 선진국들은 각종 환경오염이나 규제 등으로 인한 제약을 전혀 겪지 않으면서 경제를 성장·발전시켰다. 이를 따르는 국가들로서는 과거 선진국들이 보인 행보를 고스란히 좇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상태가 심상찮다. 같은 방식을 고수했다가는 지구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이 위태로움에 빠지고야 말 것이다. 이미 지구온난화는 시작되었다.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토네이도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지진과 태풍에 수천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아이티 칠레 중국 등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사용량을 보았을 때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국가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소비 지향적인 삶을 바꾸는 것보다는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국가들을 억누르는 것이 보다 쉽기에, 선진국들은 숱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합의점도 도출치 못했다. 그나마 액션(action)이라고 취하고 있는 국가들은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아예 도쿄의정서의 비준마저도 거부하지 않았던가! 세계 곳곳을 오가며 엿본 세상은 막연히 상상했던 것에 비해 더욱 끔찍했다. 지금도 전기는커녕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지역이 참으로 많았다. 저런 곳에서도 인간이 살아간단 말인가? 그 곳 사람들이 느낄 고달픔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우습게도 현지인들은 이용할 물이 없는데, 국가는 물을 이용해 발전을 했고 그렇게 탄생한 전기를 해외에 수출했다. 이는 자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우리 사회의 법칙이 에너지 분야에도 적용됐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댐이 건설되면 내 고장이 발전하고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듯했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제 순진함을 탓하며 가슴을 칠 터였다. 태반이 문명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국가에선 무어가 되었건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에 강하게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우리도 그랬다. 가진 것을 파괴하면서까지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독일처럼 국가가 나서 원전 가동의 중단을 꾀하는 이상적인 경우는 아직 드물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세계 에너지 정책에 반기를 든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지금의 에너지 정책이 품은 위험성을 상기시키고, 나아가 그들이 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일을 세계의 활동가들은 담당하고 있었다. 아직 파괴되지 아니 한 공동체를 보유한 저개발 국가들이기에, 어쩌면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 앞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퍼붓는 비정한 성장의 과정을 그들은 부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처한 입장이 다르기에 이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쉬이 못하겠다. 하지만 나쁜 정책이 나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무수히 양성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옳지 않은 일이 자행되다 보니 나쁜 에너지 기행이 가능했고, 옳지 않은 일이 너무도 만연했기에 한 권의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런 책이 필요치 않은 환경을 구현해야 한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다른 누구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최근 들어, 신문과 뉴스 등에서 블랙 아웃 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한여름에 우리 집이 정전될까 귀찮기만 하며 밀양 송전탑 문제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세계 4~5위에 해당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이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130만 가구 이상이 에너지 빈곤에 놓여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제3세계 사람들은 대부분 에너지 빈곤층이나 마찬가지다.

    에너지 빈곤층은 에너지가 없어서 일상이 고단하고, 쓰지도 않은 에너지, 쓰지도 못할 에너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다. 에너지는 공기, 물, 음식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정의와 평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후정의 원정대와 함께 ‘기후변화 시대, 평등한 에너지란 무엇인가’ 묻는 나쁜 에너지 기행 을 떠나보자. 오늘 내가 무심코 쓰는 에너지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에너지 기행 ― 기후정의 원정대, 탈핵을 넘어 에너지 평등을 찾아 는 나쁜 에너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 기록이다. 에너지·기후 분야의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일원들이 꾸린 ‘기후정의 원정대’는 2010년 착한 에너지 기행 에 이어 또다시 에너지 기행을 떠났다. 원정대는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일본을 누비며 에너지 평등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에너지 불평등의 시대, 착한 에너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책을 펴내며

    1부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 에너지 불평등
    정의는 에너지 앞에서, 기후변화 앞에서 멈춘다 | 이정필
    자원의 저주, 불 꺼진 제3세계 | 이진우

    2부 슬픈 에너지 기행
    [필리핀] 에너지 갈등의 도가니
    자동차를 위한 잔혹 동화 | 유예지
    땅과 바람을 일구는 사람들, 시밧 | 유예지
    파야타스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보장될 것인가 | 손은숙
    멈춰 선 핵 발전소, 원자로 안을 보다 | 손은숙

    [태국] 관광 대국 태국의 헐벗은 그늘
    방콕, 신이 만들고 인간이 버린 도시 | 이진우
    소박하지만 강인한 공동체의 초대 | 조보영
    미래를 위해 사람을 빌려드립니다 | 이진우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쫓겨난 빈민의 땅, 우동 | 이진우
    소수 민족의 눈물로 댐을 만들다 | 손형진

    [라오스] 메콩의 심장, 라오스의 선택
    초소수력 발전기를 만나러 가다 | 이영란
    태양광 발전기, 안녕하신가 | 이영란
    메콩에 세워지는 최초의 댐, 싸이냐부리 댐 현장 탐사 | 이영란
    ‘아시아의 배터리’ 정책 그리고 5퍼센트의 희망 | 이영란

    3부 평등한 에너지, 정의로운 기후를 위해
    [멕시코] 기후에도 정의가 필요하다
    익스첼도 유엔을 구원할 수 없었다 | 이정필
    코차밤바가 희망이다 | 이정필
    볼리비아여, 눈물 흘리지 마오! | 이정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을 점령하라
    카타르에 밀린 한국 | 이정필
    오염자의 총회를 향한 아만다! | 이정필
    제2의 아파르트헤이트, 더반 플랫폼 | 이정필

    [독일] 독일은 어떻게 탈핵을 준비하고 있을까
    선술집의 반핵 포스터, 일요 마을 시장에서 만난 반핵 캠페인 | 한재각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다 | 한재각

    [일본] 후쿠시마의 눈물, 일본의 선택
    29년 동안 반핵 투쟁 벌여온 사람들 | 김현우
    핵폭탄과 핵 발전, 모두 안 된다 | 김현우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