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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웃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4. 2. 25. 12:41


    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같다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무화(無化)의 길……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성자의 삶 같다 그러므로,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간다 문명에서―문맹으로 휴일 없이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 유홍준, 「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을 보며 시인은 하느님을 생각한다. 하느님은 조물주(造物主)이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을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돌려놓는 조물주에 비유한다. 하느님은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비우는 존재이다. 인간의 욕망이 덕지덕지 묻은 세상에 흰 눈을 내려 하느님은 이 세상을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무화(無化)의 길……”로 만들어낸다.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려면 제지공은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길을 걸어야 한다. 무언가를 없애는 길은 마음을 비우는 길과 다르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이 헛된 욕망으로 세운 화려한 세상에 현혹되지 않는다. 하나를 채운 욕망은 언제나 더 큰 욕망으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 더 많이 채울수록 욕망은 더 많은 갈증을 느낀다. 없애고 또 없애는 제지공의 삶을 시인은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고 이야기한다. 백지는 흰 눈에 쌓여 있다. 헛된 욕망으로 세워진 거대한 도시는 흰 눈에 덮여 무화되는 찰나에 있다. 아무나 세상을 백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존재만이 이 세상을 백지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라는 시구에 나타나듯, 시인은 “없애고”라는 시어를 반복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길을 제시한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야 마음이 비워진다. 마음을 비우는 데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거지는 소유물이 없는 존재이고, 성자는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존재이다. 소유물이 없는 거지가 소유라는 개념 자체를 버릴 때 거지와 성자는 하나로 만난다. 시인은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 간다”라고 쓰고 있다. 문자를 잃어가는 것은 문자를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문맹이 되어 간다는 말 또한 글자를 모른다는 말이다. 글자를 아는데도 그들은 문자를 잃어가고 문맹이 되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스스로 글자를 잃어버리고 문맹이 된다.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문자를 잃어가는 것일까? 문자는 우리를 의미에 얽매이게 한다. ‘개’를 생각하면 우리는 멍멍 짓는 동물을 떠올린다. 개는 멍멍 짓는 동물이라는 의미에 매여 ‘개’를 판단하는 것이다. 의미에 매이면 분별심이 일어난다. 분별심은 시비(是非)를 나누는 마음이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이것은 왜 옳고, 저것은 왜 그른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옳으므로 저것이 그르다고 말하고, 저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것이 옳기에 이것이 그르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족한 문명은 바로 이러한 시비지심으로 만들어졌다. 의미를 손에 쥔 존재는 스스로를 시(是), 곧 옮음의 자리에 놓는다. 인간은 옮음의 자리에 서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인으로 행세한다. 인간의 맞은편에 비(非)에 해당되는 자연이 선다. 자연은 그른 것이므로 교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인간의 입맛으로 개조한다. 문자로 사물을 명명하면서 인간은 자연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 밖에 있는 성스러운 사물이 아니다. 이성의 언어로 무장한 인간 앞에서 자연은 초라한 사물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댐을 만들어 강줄기를 제 마음대로 바꾸고, 산을 뚫어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도로를 만든다. 문명 발달이 왜 자연 파괴를 반드시 동반하겠는가? 문명은 자연을 파괴한 자리에 들어선다. 자연을 대상화하는 마음이 없이 문명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문명은 처음부터 자연과 대척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연에 폭력을 행사하는 문명은 욕망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 아니라, 욕망을 더 큰 욕망으로 늘리는 과정을 동반한다. 시인이 “문명에서―문맹으로” 가는 길을 시가 가야 할 길로 제시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문자=의미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문명이라는 ‘자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문명에 집착하는 자아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자연을 얽매는 글자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자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지공들은 이를 위해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든다. 백지에는 아무 글자도 씌어 있지 않다. 문명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를 속속들이 비우기 위해 하느님을 닮은 제지공들은 마음을 비우고 비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휴일 없이” 반복되는 이 정화의 길은 백지에 이르는 길이 그만큼 힘겨운 일이라는 걸 암시한다. 문맹에서 문명으로 가는 길은 아주 쉽다. 아는 것을 표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명에서 문맹으로 가는 길은 그러나 아주 어렵다. 마음을 비우려면 소유에 집착하는 자기를 ‘죽여야’ 한다. “휴일 없이” 자기를 죽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문자를 잃고 문맹이 되어가는 제지공이 되고 싶은가? 그러려면 먼저 글자로 가득 찬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맹이 되려면 자기 마음을 채운 문명을 먼저 털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구사와 육체를 왜곡하고 비트는 방식으로 현실의 불모성을 드러내어 크게 주목받았던 유홍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세계의 폭력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상을 섬뜩하게 전면화하던 시세계가 조용하게 무르익은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아버지-세계와의 관계를 좀더 구조적으로 넓고 깊게 탐색하여 자기 자신이 그 세계의 일부임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인상깊게 그려진다. 더 능수능란해진 시어구사와 활달한 기량으로, 숙련공의 모습으로 돌아온 시인의 성숙한 삶의 자세가 돋보인다. 자신의 ‘흉터’로 가난한 다른 생의 모습까지 보듬는 너른 시선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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