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괴물이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 어려서부터 조기영재교육을 받거나 영어를 배우러 태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튼튼하게 자랄 수 없듯 제대로 놀지 않으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어른이라고 놀이를 싫어할까. 그러나 놀지 않고 오랜 세월 살다 보니 놀이를 잃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도 빼앗으려고 한다. 놀지 않고 공부하는 게 아이들의 몫이라고 여기려 한다. 노는 아이들을 괴물이라고 바라본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최덕규 작가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찾아온 우주의 괴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름이는 놀 줄 아는 아이다. 내복에 빨간 망토 하나 목에 두르고 장롱에 들어갔다가 날아서 나오거나, 문이 열린 양쪽 기둥을 잡고 오르내린다. 천을 두르고 데구르르 구르며 벌레 흉내를 내고, 청소기에 올라타고 이랴 이랴 발을 구른다. 눈밑을 두 손가락으로 애래쪽으로 당기며 괴물 흉내를 내고, 장바구니를 뒤집어쓰고 아예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여름이의 괴물 선언에 대해 엄마는 얌전히 좀 있으라고,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말해도 엄마는 도통 알아먹지 못한다. 여름이는 종이가방을 뒤집어쓰고 집 밖으로 나간다. 자기가 누군지 지구인들에게 알려 줄 생각이다. 지구인들이 자기를 보고 궁금해하자 괴물이라고 소리친다. 어른들은 한 쪽 방향으로 우르르 달려간다. 드디어 지구인들이 우주에서 온 자신을 알라본 것일까. 이런, 그게 아니라 버스가 도착해서 타기 위해 우르르 달려간 것일 뿐이다. 가방을 든 아저씨도, 할머니도, 유모차를 미는 아줌마도, 아가씨도, 지팡이를 집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도 도통 괴물을 못 알아본다. 그러다 아이들 놀이터까지 다다른다. 아이들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여름이가 소리친다. “나는 괴물이다.” 바람을 가르고 빛보다 빠르고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진짜 무시무시한 괴물!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게 반응한다. 여름이 괴물을 피해 우르르 도망간다. 비로소 아이들이 여름이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아이들은 이내 킹왕짱 괴물이라며 우르르 여름이에게 달려든다. 이제는 여름이가 도망가야 한다. 아이들은 몽달귀신으로, 슈퍼맨으로, 해골로, 번개맨으로, 슈퍼울트라 캡숑파워로봇으로 쫓아오니 말이다. 서로 쫓고 쫓기며 한참을 놀아 놀이터가 떠들썩하다. 함께 모여 칙칙폭폭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는 알게 된다. 놀이터의 아이들도 자신처럼 지구에 놀러 온 괴물이란걸. 잠들면 우주로 떠났다가 아침이면 다시 놀아오는 괴물들이란 것을.
우리 아이들은 장난감, 게임기, 컴퓨터처럼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가지고 노는 놀이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주인공 괴물처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종이봉투를 자신을 알리는 멋진 가면으로, 커다란 종이 박스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주선으로 만들어 놀 줄 아는 놀이와 점점 멀어지고 있지요.

작가는 아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로 하나뿐인 장난감도 만들고, 자신을 괴물이라고 정해 상상의 힘으로 가상현실 놀이도 즐기는 경험을 해 보기를 바란답니다. 기계에 진짜 놀이를 빼앗긴 우리 아이들에게 작가가 말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지구에 놀러 온 괴물처럼 처음 보는 또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뛰놀 줄 아는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는 진짜 놀이를 하자, 얘들아!

silhouette(윤곽) , leavening(효모) , abridge(요약하다)

[고화질] 열혈강호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