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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은 넓다
    카테고리 없음 2021. 2. 28. 02:50

    부산은 넓다

    이 책은 서울내기인 저자가 부산에 반해서 부산에 대해 쓴 부산애정고백록이다. 애정을 갖고 쓴 문장은 편하게 읽힌다. 책에 나온 수많은 사진과 그림들, 자료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만족한다. 부산의 옛 모습과 오늘의 모습을 잘 버무려놓은 것은 저자가 부산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부산이 넓다고 한다. 땅이 넓은 것이 아니라 부산의 품이 넓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엔 초량동에 왜관을 만들어 일본 사신을 머물게 했을 뿐 아니라 일본인의 거류지로도 내어주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이 모여들어 북적거렸고, 외국으로이민 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들어오는 외국인을마중하느라 부산항은 늘 복잡했다. 베트남 전쟁 때 군인들이생사를 장담 못한 채 떠난 곳도 부산항이다. 이렇게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막지 않는 곳이 부산이기 때문에 저자는 부산을 품이 넓은 도시라고 했다.저자는 부산을 향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놓았다. 부산의 정체성을 뭐라고 할 수 있을지, 하필 영도다리에서 사람들이 왜 몸을 던지는지, 부산의 명물 밀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이런 질문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오늘을 알려주는 이 책은 학술적 딱딱함 대신 부드러움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조용필의 가수 생활을들여다보며 부산의 정체성을 밝히고, 아직까지도 타 지역에 비해 점집이 많이 남은 영도다리를 탐구하면서 부산 사람들의 불안과 기대를 들여다보고 있다. 부산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우암동 일대다. 유엔묘지가 있고, 제2부두가 있으며 골목 끝에동항성당이 있는 우암동에는 부산의 명물인 밀면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피난민 수용소가 있던 우암동에 거처를 잡았던 이북 사람중에 고향동네 이름을 붙여 식당을 연 이가 있었다. 고향에서도 함흥냉면집을 크게 했던 주인이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다시 냉면집을 낸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질긴냉면을 싫어했다고 한다. 성질이 급한 경상도 사람들은 음식이 빨리 목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답답해했는데냉면은오래 씹어야하는 음식이니 장사가 안 된 것이다. 이때 주인이 궁리 끝에 밀가루와 전분을 섞은 국수를 만들어 냉면육수를 부어 손님상에 낸 것이 밀면이라고 한다. 밀로 만든 냉면이라는 거였다. 밀면의 부드러운 식감은 경상도 사람들과 잘 맞았고 멀리서도 찾아올 만큼 유명세를 탔다. 그 원조집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현재 주인은 3대로 그 집안 며느리들이다. 밀면이 탄생한 비화를 소개하면서 북한의 냉면과 남쪽의 국수 이야기까지 듣다보면 밀면은 한국전쟁이 만든 서러운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암동 내호 식당에 가서 밀면 한 그릇 배 부르게 먹은 뒤 그 동네 사람처럼 천천히 골목을 산책하고 싶다. 부산하면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야경이 실은 산꼭대기를 향해 이어지던 집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낯설음이란.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바다가 있는 부산을 좋아한다. 부산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늘 부산이 그리운 건그곳 어디가에 놓고온 청춘의 시간들 때문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기존의 부산 책들과는 좀 다르다. 저자는 외부인이다. 그에게 부산은 낯설면서 매혹적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왕 자리에 오른 조용필이 ‘바위를 치더라도, 머리가 깨지든 바위가 깨지든 우선 들이대야 한다 고 말한 것처럼 부산에 부딪쳤다. 그렇게 깊숙이 개입한 외부인에 의해 부산이 그 속살을 드러낸 결과물이다.

    부산의 산동네, 노래방, 부산 밀면, 조내기 고구마, 영도 할매와 같은 소재는 제도권 학문에서는 변방으로 밀려나 있지만, 이처럼 부산의 문화를 잘 비춰주는 거울도 없다. 예컨대 왜관에서는 ‘조선과 일본인의 만남’, 동래온천에서는 ‘농심호텔에 서 있는 노인상’, 영도다리에서는 ‘수많은 투신자살 사건’, 임시수도에서는 ‘번창했던 다방들’, 부산항에서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본 책이다.

    머리말 인문학의 바다에서 잡아올린 부산 이야기

    제1부 ‘돌아와요 부산항에’ - 부산은 항구다

    제1장 조용필은 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을까: 부산항과 부산다움
    부산은 항구다 | ‘충무항에’서 ‘부산항에’로 | 1960년대 ‘잘 있거라 부산항’ |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그리운 내 형제’는 누구일까 |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 | 바운스 조용필, 바운스 부산

    제2장 왜관에서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왜관과 한일 교류
    후쿠오카에서의 회식 | 교린의 뜻으로 세운 왜관 | 초량 왜관의 동관과 서관 | 왜관에서의 특별한 만남
    | 개시대청의 무역과 잘못된 만남? | 만남과 경계의 파괴: 왜관에서 전관 거류지로

    제3장 영도 할매는 어디에서 왔을까: 영도 신의 탄생기
    신석기인들의 조개 가면 | 영도 할매 해코지설 | 영도는 목마장이다 | 신선동 아씨당 전설 | 작은 제주, 영도
    | 영도 할매, 영등 할매, 봉래산 산신 | 영도 할매의 속신을 푸는 열쇠

    제4장 기장군의 동해안별신굿은 풍어제일까: 기장 사람들의 마을 축제
    살아서 꼭 봐야 할 곳 | 골맥이신과 동해안별신굿 | 부산에 축제가 있을까 | 신이 살아 있는 갯마을
    | 굿당에서의 섈 위 댄스 | 풍어제의 위기 | 까꾸리 할매의 기원

    제2부 ‘굳세어라 금순아’ - 피란과 실향의 부산

    제5장 밀다원 시대는 어떻게 열렸을까: 임시수도의 다방과 문학
    커피의 시대, 커피전문점의 시대 | 밀다원 시대의 개막 | 다방의 역사, 예술인들의 아지트
    | 임시수도 부산, 다방의 번창 | 다방의 가십: 레지와 커피 얌생이질 | 문인들에게 좌석을 파는 다방
    | 시인 자살 사건 | 밀다원 시대의 진화

    제6장 그들은 왜 영도다리에서 몸을 던졌을까: 부산 사람들의 자살과 운명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 | ‘들리는 다리’의 탄생 | 영도다리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
    | 영도다리 투신자살 미수 사건 | 불안과 기대, 점바치 골목 | 영도다리는 죽음의 다리
    | 248명을 구해낸 박을룡 경사 | 노쇠한 영도다리 운명은 어디로

    제7장 부산 밀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부산의 맛과 누들 문화
    아버지의 밀가루 | 밀면의 원조, 내호 냉면 | 冬냉이냐, 夏냉이냐 | 냉면집 배달부 | 동래시장의 누들맨
    | 우암동 밀면의 탄생 | 추억으로 먹는 밀면

    제8장 「1번가의 기적」은 부산 산동네의 기적일까: 부산 산동네와 영화
    윤제균 감독의 화려한 변신 | 「1번가의 기적」을 촬영한 산동네 | 그들이 산으로 간 까닭은?
    | 「1번가의 기적」은 물만골의 기적이었나 | 일본 귀신이 출현하는 비석마을로
    | 까치고갯길을 넘어 감천동 산동네로 | 산동네의 ‘똥’과 도시 재생 | 부산 산동네의 사소한 기적

    제3부 ‘~라구요’ - 부산 문화의 탄생

    제9장 부산 노래방에서 부르는 ‘~라구요’: 부산의 ‘방’문화와 노래
    노래방의 첫 추억 | 피란민 2세대의 ‘~라구요’ | ‘라구요’의 배경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 트로트와 왜색의
    주홍글씨 | 가라오케 문화의 상륙 | 노래방의 진화론 | 방 문화의 실험실, 부산 | ‘~라구요’에서 ‘삐따기’로

    제10장 조내기 고구마가 주는 ‘처음처럼’: 조선통신사의 선물
    겨울은 달다 | 영가대에 선 조엄 |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 고구마의 대항해 | 조내기 고구마를 찾아서
    | 강필리와 이광려 | 목화와 고구마의 ‘처음처럼’

    제11장 ‘동래 온천의 노인상’은 누구일까: 온천에서 찜질방으로
    농심호텔의 노인상 | 동래온정의 온정개건비 | 동래온천을 향한 일본인의 욕망 | 욕조에 몸을 담근 두 여인
    | 물싸움이 나다 | 때 미는 탕에서 노는 광장으로

    제12장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헤엄을 칠 수 있을까: 물놀이와 유혹의 역사
    해운대 해수욕장의 만화경 | 조선시대의 물놀이법, 천렵과 탁족 | 납작 가슴을 두드러지게 하는 수영
    | 우리나라 제1호 해수욕장, 송도 | 활활 벗어버린 몸뚱이들 | 근대 해수욕장의 고민 | 그러나, 바다는 위험하다 | 동해남부선의 개통 | 거북 할머니의 출현과 해상 청와대 | 해운대의 역전과 송도의 운명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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